유재선 감독의 데뷔작이자 본의 아니게 이선균 배우의 유작이 되어버린 영화 "잠" 입니다.
1. 영화 "잠"의 줄거리
영화의 이야기는 정유미(수진), 이선균(현수) 두 배우를 중심으로 진행됩니다.
무명의 배우인 현수(이선균)와 모 식품 회사 직원인 수진(정유미)의 지극히 일상적인 부부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누가 들어왔어"
잠을 자던 중에 마치 도둑이라도 든 것 처럼 일어나서 또렷한 목소리로 이야기 하고는 다시 잠이 들어버리는 현수를 수진은 단순한 잠꼬대로 생각하고 무심코 지나쳐버립니다.
다음날 얼굴이 피범벅이 된 채로 잠에서 깬 현수의 모습을 보며 평온했던 수진과 현수의 삶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한밤 중 냉장고를 뒤져 음식을 먹고 있는 모습, 생고기를 아무렇지 않게 꺼내 먹는 모습 등 이상한 모습에 불안감을 느끼던 수진은 가족과도 같았던 반려견 후추를 잔인하게 죽인 남편 현수에게 불안과 공포, 혐오심 마저 느끼게 되고 수진이 아이를 출산하며 그 불안감은 최고조에 달하지만 현수의 이러한 행동을 치료하고 바로잡아보려 노력합니다.
하지만 현수의 증상은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아이의 신변에 위협이 될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수진은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집에 찾아온 무당의 말을 계기로 현수의 몸에 들어온 무언가에 대해 집착을 갖게 됩니다. 몇 년 전 자신의 집 아래층에 거주하던 노인이 수진을 성적 대상화 했던 기억들, 그가 했던 말들, 그리고 그의 사망소식과 아래층에 새로 이사온 여인의 정체가 그 노인의 딸임을 알게되며 수진의 집착은 확신이 되어가고 현수의 몸에서 그 노인을 꺼내기 위해 비정상적인 행동들 마저 보이던 수진은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게 됩니다.
수진이 입원 한 사이 꾸준한 치료를 통해 현수의 증상은 호전되는 모습을 보이고 현수는 수진이 병원에서 퇴원해 가족이 함께 살 수 있는 행복한 날들을 꿈꾸지만, 집에 돌아온 수진은 아래집 여성을 납치해 위협까지 하며 비정상적인 모습으로 현수의 몸속에 있는 노인을 떠나보내기 위한 만행들을 벌입니다. 수진의 노력 덕분인지, 현수의 뛰어난 연기력 덕분인지 결국에는 현수의 몸속에 있던 노인을 떠나보낸 수진은 현수와 함께 '문제를 극복'하며 영화는 마무리 됩니다.
2. 영화 "잠"의 감상 포인트
1) 봉준호 키드 유재선 감독의 장편 영화 데뷔작
영화 "옥자"를 통해 봉준호와의 인연을 쌓게 되면서 봉준호 감독을 자신의 롤모델로 삼으며 영화 공개 전부터 '봉준호 키드'의 데뷔작 이란 이유만으로 영화의 기대감을 높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만큼 봉준호 감독의 색깔이 묻어 있는 동시에 봉준호 감독과 다른 유재선 감독만의 색깔 또한 볼 수 있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2) "신과 함께" 음향 감독 출신의 음향 연출
'봉준호 키드'라는 별명과 함께 유재선 감독의 특별한 이력이 또 하나가 있습니다. 영화 "신과 함께-인과 연", "신과 함께-죄와 벌"에서 음향감독으로 참여했었다는 부분 입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영화 "잠"에서도 장면마다 적절한 배경음악과 효과음들로 영화 속의 긴장감과 재미를 더하고 있는 점도 흥미로운 감상 포인트가 될 수 있습니다.
3) 장편 영화 데뷔작, 떠나버린 이의 유작
사실 영화 "잠"을 보고자 마음 먹었던 가장 큰 이유는 '봉준호 키드', '신과 함께'의 음향감독 출신의 유재선 감독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주연 배우인 이선균 배우가 여러 사건들로 조사를 받으며 구설수에 오르내리던 당시 이선균 배우가 혹여나 실형을 받게 된다면 영화를 보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일부러 시간을 내어 영화를 관람 했습니다. 유재선 감독에게 영화 "잠"의 주연 배우로 이선균을 추천한게 봉준호 감독이었다는 이야기도 있어 더 씁쓸한 마음이 드는 것 같습니다.
"거봐, 다 극복할 수 있어"
영화 "잠"에서 수진(정유미)이 현수(이선균)을 끌어안은 채 하는 마지막 말 입니다.
이선균 배우의 마지막 순간에 이 말을 기억했었더라면 영화 "잠"이 누군가의 유작이 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3. 정신건강의 관점에서 본 주관적 후기
"정신건강"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 필자에게 영화 "잠"은 몇가지 감상 포인트가 더 있습니다.
1) '잠'의 중요성
정신건강 관련 상담을 하면서 일상생활에 대해 중요하게 확인하는 부분 중 하나가 '잠' 즉 수면과 관련된 부분입니다.
영화 속에서도 현수의 수면문제로 인해 이야기가 시작되고 수진의 수면문제로 이야기가 극에 달하는 전개를 볼 수 있습니다. 결국엔 "현수와 수진 둘 중 누구의 잠(수면) 문제가 더 컸던 것인지 여부에 따라 영화의 해석이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가져보았습니다.
2) "둘이 함께라면 극복 못할 문제는 없다."
현수와 수진의 가훈으로 영화속에서 소개되는 문장입니다.
현수와 수진의 문제를 정신건강 영역의 문제로 본다면 두사람이 결국엔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엔딩을 맞이 할 수 있었던 이유가 서로간의 믿음과 정신건강의학과를 통해 치료 할 수 있도록 지원 해주었던 지지체계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정신건강상의 어려움을 치료, 회복하는 데에는 가족을 포함한 주변사람들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가족의 지지 여부에 따라 예후가 많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혹시나 주변에 영화 속 현수나 수진의 모습처럼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먼저 관심을 갖고 손을 내밀어 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