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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보통 상대가 의도를 가지고 한 말에만 의미를 부여한다고 생각한다. 조언이거나, 평가이거나, 분명한 목적이 느껴지는 말이라면 그 이유를 따져보게 된다. 반대로 아무 생각 없이 나온 것처럼 들리는 말은 금방 잊힐 거라고 여긴다. 나 역시 그동안은 그렇게 생각해왔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돌아보니, 내 생각과 판단에 은근히 영향을 준 말들 중에는 의도가 전혀 없어 보였던 말들도 적지 않았다. 그 말들은 중요해 보이지 않았고, 특별히 새겨들을 이유도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계속 마음 한편에 남아 있었다. 이 글에서는 아무 의도 없어 보였던 말이 왜 그렇게 신경 쓰였는지, 그리고 그 말이 나의 기준을 어떻게 건드렸는지를 정리해보려 한다.

그 말을 들었던 상황은 아주 사소했다. 나는 어떤 이야기를 길게 설명하지도 않았고, 깊은 고민을 털어놓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일상적인 흐름 속에서 내 근황과 최근에 있었던 일을 짧게 언급했을 뿐이다. 그 이야기를 듣던 사람은 별다른 반응 없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대화가 끝나갈 즈음 이렇게 말했다. “그런 얘기는 네가 자주 하는 것 같아.” 그 말에는 비판도, 조언도,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정말로 떠오르는 생각을 그대로 말한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 말을 듣고 특별히 반응하지 않았다. 굳이 설명을 덧붙일 필요도 없었고, 반박할 이유도 없다고 느꼈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다른 주제로 넘어갔고, 그날의 만남도 그렇게 끝났다. 그 순간만 놓고 보면, 그 말은 대화의 흐름 속에서 금방 사라질 만한 한 문장이었다.
그런데 집에 돌아온 뒤에도, 며칠이 지나서도 그 말이 문득 떠올랐다. 나는 왜 그 말이 계속 생각나는지 스스로에게 물었지만, 처음에는 명확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 의도도 없어 보였고, 나를 평가하는 말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말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떠올랐고, 내 이야기를 다시 되짚게 만들었다.
시간을 두고 곱씹다 보니, 나는 그 말이 신경 쓰였던 이유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그 말은 새로운 정보를 주지도 않았고, 방향을 제시하지도 않았지만, 내가 반복해서 꺼내는 이야기의 패턴을 그대로 비추고 있었다. 나는 스스로 인식하지 못한 채, 비슷한 상황과 비슷한 감정을 여러 번 이야기하고 있었고, 그 말은 바로 그 반복을 가볍게 짚어주고 있었다.
그 말이 불편하지도, 공격적으로 느껴지지도 않았던 이유는, 그 안에 판단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나는 그 말을 쉽게 무시하지 못했다. 누군가가 “너는 항상 그렇다”고 단정적으로 말했다면, 나는 방어적으로 반응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주 하는 것 같다”는 표현은, 내가 스스로 돌아보게 만드는 여지를 남겼다.
이 경험 이후로 나는 누군가의 말이 의도 없어 보일수록, 그 말이 어떤 지점을 비추고 있는지를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었다. 모든 말에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지만, 유독 마음에 남는 말이라면 그 말이 나를 평가해서가 아니라 나의 반복을 드러냈기 때문일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의도가 없는 말은 때로 가장 솔직한 관찰일 수도 있다.
그 이후로 나는 내가 자주 꺼내는 이야기들이 무엇인지, 어떤 상황에서 같은 말을 반복하는지를 스스로 점검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내가 생각보다 한 가지 감정이나 한 가지 고민에 오래 머무르는 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 인식은 나를 부끄럽게 만들기보다는, 선택의 기준을 조금 더 분명히 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다는 건, 아직 정리되지 않은 기준이 그 안에 남아 있다는 신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그 말은 나에게 어떤 행동을 요구하지도 않았고, 변화를 촉구하지도 않았다. 그저 내가 평소에 하고 있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말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 담담한 관찰이 오히려 내 생각을 멈춰 세웠다. 나는 그 말을 통해, 내가 어떤 주제에서 자주 맴돌고 있는지를 처음으로 자각하게 되었다.
지금의 나는 누군가의 말이 아무 의도 없어 보일 때, 그 말을 그대로 흘려보내기보다는 잠시 멈춰서 생각해본다. 그 말이 틀렸는지 맞았는지를 판단하기 전에, 왜 그 말이 기억에 남았는지를 먼저 살펴본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내 생각의 반복과 정체를 조금 더 솔직하게 마주하게 된다.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 있다면, 아무 의미 없어 보였던 말이 계속 마음에 남을 때 그 느낌을 굳이 밀어내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 말이 중요한 말을 해서가 아니라, 그 말이 내가 보지 않으려 했던 반복을 조용히 보여주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무 의도 없어 보였던 말이 신경 쓰였던 이유는, 그 말이 나를 평가해서가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을 다시 보게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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